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로든 전투 (문단 편집) === 왕의 죽음 === 잉글랜드군 중앙부대는 밀리는 중인 서리의 좌익을 돕기 위해 왼쪽으로 틀어, 제임스 4세 부대의 좌측방을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 활약해야 했을 스코틀랜드군 예비대는 언덕을 내려가 잉글랜드군 중앙의 측면을 치는 대신 제임스 4세의 꼬리에 따라붙었다. 여태까지 움직이지 않은 아가일과 레녹스의 스코틀랜드 우익부대가 제임스 4세를 구원하러 출동할 때, 측방에서 새로운 부대가 출몰했다. 3천 5백 명과 함께 낙오해서 행방불명이었던 에드워드 스탠리 경이 갑작스럽게 스코틀랜드 우익의 우측방에서 나타난 것이다. 스탠리의 장궁병들은 즉시 하이랜더들에게 화살세례를 날려 수백을 살상했다. 스코틀랜드 우익은 패주했고, 제임스 4세의 부대는 전장에 홀로 고립되었다. 서리 백작을 잡아 전황을 역전하는 것을 노린 제임스 4세는 가장 신임하는 중갑 기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돌격하여 잉글랜드군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하지만 끝내 서리 백작에게 닿지 못하고 오히려 패하고 포위되었으며 말에서 떨어진 제임스 4세는 기사들이랑 병사들과 함께 처절하게 저항하다가 결국 잉글랜드군의 공격으로 전사했다. 왕의 군기가 쓰러지자 스코틀랜드군은 사기가 떨어져 전면적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데이커의 잉글랜드 기병대가 도망치는 스코틀랜드군을 추격했다. 홈과 헌틀리의 그나마 멀쩡한 부대를 주축으로 브랜스턴 언덕 위에 모인 스코틀랜드군 패잔병들은 언덕 위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다음날 국경으로 허겁지겁 도망쳤다. 다음날 전장을 시찰한 서리 백작은 그제서야 승리의 규모를 깨달았다. 브랜스턴 언덕 아래의 시체들 사이에는 왕 1명, 백작 9명, 주교 2명, 수도원장 2명[* 고위 성직자가 왜 전사자에 포함되냐면 중세 유럽에서는 성직자들도 전시에 무장을 하고 전투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영주 14명, 셀 수 없는 기사들, 그리고 1만에 달하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죽어 널브러져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